한국전쟁의 판도가 뒤바뀔 뻔한 문경전투

낄낄이 18-09-05 08:48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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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당시 미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특수부대를 조직하게 된다.

정확한 조직명은 'Special Activities Group:특수공격부대'

이들은 안동,영주,충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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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대가 움직이기전 수색부대가 수색을 나선다.

수색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파악,현지인과 정보공유등의 이점으로

군단 최전방에 한국부대를 내세웠고 그로인해 수색부대들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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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적이고 전문적인 군사훈련은 일본에 있는 미군비밀캠프였다.

이곳에서 무기 다루는법부터 공수훈련까지 강도높은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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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신불산에서 빨치산과 첫교전을 펼쳤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중대장마저 교전중 전사하였고 그로인한 피해는 컸다.

첫전투에서 성과를 내지못한 이들은 곧바로 문경으로 보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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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서울과 영남을 이어주는 관문이다.

이곳이 뚫리면 대구와 부산도 무사할수없기에 이곳의

방어를 위해 여러부대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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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경은 한국전쟁전부터 빨치산과의 크고작은 교전이 끊이질않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민병대까지 조직해 빨치산 소탕에 힘을 쏟던중이였다.

전쟁당시 8만명에 이른 남쪽포로중 4만8천명이 빨치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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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 성벽과 함께 호도 구축해두었고, 각 부대들 또한 진지구축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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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불과 300~400m 떨어진곳에 이미 인민군들이 잠복해있었다.

규모는 약 3000명 가량이였는데 이 대부대 정체는 무엇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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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이곳까지 어떻게 오게된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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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임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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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2군단이 그곳에 남은 이유는 치밀한 계획이였다.

김일성은 2군단에게 게릴라식 전투로 전진하던 국군의 세력을 흔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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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리 잠복해있던 북한의 대규모 부대는

우리 국군의 모든 이동경로 및 규모와 진지파악이 끝난상태.

그리고 얼마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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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선제공격을 해왔고 그렇게 3000명과 300명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후속부대는 커녕 후퇴도 쉽지않아 맞서싸우는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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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투라고 하기보단 살기위해, 지키기위해 이 악물고 버텼다라는게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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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떨어지는 탄약과 애시당초 3000명과 300명의 싸움.

그것도 기습을 당한 우리 국군은 사실 최후의 선택까지 염두해둔 상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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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찰나 우여곡절끝에 대구와 무전이 닿았고,

공군의 합류로 북한군은 문경을 포기하고 안동으로 퇴각했다.

하지만 미 10군단과 미 해병사단에 포위됐다.

기적같은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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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명을 사살하고 80명의 포로를 생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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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전투는 비록 2~3일간에 짧은 전투였지만,

한국전쟁의 판도가 뒤바뀔만한 의미있고 중요한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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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던 모든 국군장병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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