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 문화 팩트

낄낄이 20-11-01 18:28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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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ㅋㅌ ()

    종손집 제사상 보면 높고 좁은 작은 상에

    과일 몇개랑 포 탕 몇 그릇 밖에 없음 

  • ㅇㅇ ()

    조선 초기의 양반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가문을 칭함. 합격하면 진사 생원이 되고 학생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높은 시험을 보면 관직에 오르는 구조. 노비만 아니면 양인들은 누구나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양반이 될 수 있었고 이후 가문에서 대를 이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이 아니게 되는 구조. 그러나 과거 시험이 워낙 어렵고 준비기간도 길게 필요해서 벼슬을 하여 땅을 받고 세금을 면제받는 양반 집안에서 합격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점차 계급화됨(게다가 음서나 천거 등 기득권 보전의 방법도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사용함)

    그러다가 왜란 호란을 겪고 국가 재정이 박살나고 나라는 부유한 양민들에게 급하게 임시관직을 팔았고 또한 사회구조가 약해지면서 관직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양반들이 자기 족보를 팔기 시작함 그렇게 양반수가 늘어났고 기존 양반들은 자기 지역에서 진짜양반과 가짜 양반을 구별하기 위해 더욱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었음 그게 각종 명부나 동성마을 같은 형태로 나타남.

    농업이나 상업으로 부자가 되어 양반계급을 산 일반민들은 기존 양반들의 풍습에 이해도가 부족했던데다 씀씀이가 커 과거 양반들과 다르게 과시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음 그게 지금의 제사 풍습 등에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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