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문 3부 의천도룡기 "의천과 도룡" 파헤치기

낄낄이 16-04-26 15:48 2,712

영웅문 3부 의천도룡기 "의천과 도룡"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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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를 일독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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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倚天)과 도룡(屠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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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이란 보검을 가리키는 말로, 의천검을 말한다. 
도룡은 보도를 가리키는 말로, 도룡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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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도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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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도가 출현 하면서부터 이 소설이 시작된다.
하지만 도룡도는 상서롭지 못한 보도인 듯했다.
이것이 출현하는 곳에는 곧 피비린내가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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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롭지 못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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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도가 나타나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지 분쟁과 도살이 생기니, 
정말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보도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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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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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林至尊, 寶刀屠龍, 號令天下, 莫敢不從! 
倚天不出, 孰與爭鋒?
(무림 지존은 도룡보도이니,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무엇이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
다만 우스운 것은 이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그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담긴 오묘한 비밀을 풀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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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독에 중독된 해동청 덕성은 이런 말을 했다.
"난 차라리 목숨을 버릴테다. 이 도룡도는 내 것이란 말이다." 
이 말은 정말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더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없어지게 되었고,
이성과 지혜가 사라져버리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탐욕' 때문에 목숨마저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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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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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삼협 유대암은 우연한 기회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폐인이 되어 모든 무공을 상실하고 만다.
이로 인해 무당파 장취산은 하산하여 조사를 벌이다가 은소소와 만나게 된다.
그 후 함께 천응교의 왕반산으로 가게 되었고, 
금모사왕 사손에게 사로잡혀 남극의 빙화도에까지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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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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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화도에서 장취산과 은소소는 부부가 되어 
주인공인 장무기를 낳게 된다.
사손은 이 부부와 의형제 자매고 무기의 의부가 된다.
그리고 장무기의 일생 동안의 비극과 기이한 운명도, 
모두 이 도룡도와 관련이 있으며 이 도룡도에 의해 생겨나게 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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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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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유서를 본 장무기는 서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소위 '무림 지존'이라는 말은 보도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칼 속에 숨겨진 유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병법을 연구하여 적을 맞으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말 것이니, 결국 저절로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보도 하나에만 의지한다면 어떻게 정말로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겠습니까?
서형, 이 병서를 그대에게 드릴 터이니, 당신이 악무목의 유지를 받들어 강산을 되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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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유서 2

"무림계에 전해지는 말 중에는 또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는데,
의천검은 이제 두 동강이 났습니다. 하지만 훗날 다시 붙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검 속에 숨겨진 것은 아주 대단한 무공의 비급이었습니다. 저는 이 몇마디 말에 담겨진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병서는 오랑캐를 쫓아 버리는데 쓰는 것이며, 만약 누군가가 혼자 대권을 장악한 후에
자신의 위엄과 행복을 위해서 잔인하고 횡포한 짓을 저질러 세상 백성들에게 그 화가 미치게 된다면,
한 영웅이 의천검으로 그 자의 목을 잘라버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백만 대군을 통솔하는 사람이 설사 천하를 호령할 수는 있다 해도,
반드시 의천검의 일격을 막아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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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다시 더 깊게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장무기의 그 말에 대한 해석은
가히 중국 고대의 '역사관'과 '영웅관'의 종합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격식을 보여 주고 있다. 
병서를 가지고 이민족을 몰아내어 왕위에 오르는 동시에 무도한 일을 저지른다면
즉시 의천검으로 물리치라는(암살하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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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중국의 옛 선조들은 무슨 '정치 체제'나 그 '민주와 법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임금에게 덕이 있기를 바라고, 임금에게 덕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영웅이 무도한 자를 암살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 편의 '암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왕조가 바뀌어 '본족'이 통치하든 이민족이 통치하든,
그것은 그저 내용만 바뀌고 형식은 그대로인,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 아주 슬픈 '정치적 이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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